`스타일의 파격` 서울 상도선원
은빛 부처, 디자인 입힌 선방
건축 필수 견학코스로 입소문
사찰 하면 판에 박힌 이미지가 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창과 칼을 든 사천왕, 그 아래 무릎을 꿇은 아귀들, 법당 처마 밑의 울긋불긋한 단청과 ‘풀빵 기계’로 찍어낸 듯 천편일률적인 천불(千佛)상. 또 어딜 가나 불상은 금박을 입혀 반짝거린다. 사람들은 불평한다. “한국 절집에는 옛날 스타일만 있고, 요즘 스타일은 없다”고 . 디자인과 스타일 측면에서 따지면 500년 전의 불교, 1000년 전의 불교는 있는데 ‘2009년의 불교’는 없다는 거다.상도선원 법당 천장에 설치한 ‘일년등(左·一年燈·소원을 담아 1년간 법당에 켜는 연등)’. 연꽃 모양의 격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한지 모자이크 작품처럼 꾸몄다. 오른쪽은 비행기 몸체를 만드는 금속인 두랄루민으로 제작한 석가모니 불상. 뒤의 광배(아우라)와 작은 불상들도 개성이 넘친다. | |
2009년의 불교와 스타일 만들기는 일종의 모험이자 파격이다. 그러니 선뜻 총대를 메는 이가 없다. 서울 상도동의 상도선원(上道禪院)은 그래서 눈길을 끈다. 자청해 오늘의 불교 스타일 창조에 나섰기 때문이다. 상도선원에 가면 과거를 현재로 가져오는 파격과 오늘 우리와 함께 숨쉬는 공감대가 느껴진다. 거기서 한국 불교의 미래 스타일과 디자인이 움트고 있다.
#석굴암 불상 이미지 살린 법당
9일 상도선원을 찾았다. 숭실대학교 뒤편, 고층 아파트촌 아래 산뜻한 외벽의 상도선원이 서 있다.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은 밖에서 볼 땐 깔끔하고 차분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느낌이 확 달랐다. “여기가 갤러리야, 아니면 선방이야?” 싶었다. 법당은 지하 1층이었다. 내려가는 긴 계단은 운치가 넘쳤다. 바닥에는 붉은 부빙가 나무가 깔려 있고, 벽에는 불상 작품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불상을 감상하며 내려가다보니 긴 계단이 오히려 짧고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상도선원 현관 입구에 있는 목어(右). ‘수행자는 24시간 눈을 뜨는 물고기처럼 깨어 있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지하 법당으로 가는 붉은 나무 계단과 벽면의 미술품은 법당 가는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 |
법당 문을 열었다.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터졌다. 처음 보는 법당 풍경이었다. 편하고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앞쪽에 놓인 석가모니불상은 흔하디 흔한 금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은색에 가까웠다. 어찌 보면 돌의 느낌, 어찌 보면 금속의 재질감을 내뿜고 있었다. 불상의 선과 맵시도 파격이었다. 섬세한 옷주름과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는 모던한 맵시가 감돌았다.
상도선원 선원장 미산 스님은 “전체적으로 석굴암 불상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기본 토대로 삼았다”고 말했다. 불상은 비행기 몸체와 자동차 휠(바퀴) 등을 만들 때 쓰는 두랄루민이란 금속을 써서 불국사 석굴암 불상의 재질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되살렸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석굴암 불상이 옷을 갈아입고 ‘21세기의 디자인과 스타일’로 다시 앉은 듯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
불상 뒤의 광배(아우라)도 독특하다. 선녀들이 하늘을 나는 반원의 비천상(飛天像)을 머리 뒤에 걸었다. 멀리서 보면 광배, 가까이서 보면 비천상이다. 석가모니불 뒤의 벽면에는 450여 개의 조그만 불상이 걸려 있다. 표정과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 미산 스님은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패턴이고,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보면 부처님 형상”이라며 디자인적인 시선을 설명했다.
법당 천장에 걸린 등(燈)은 한지 작품을 방불케했다. 산뜻한 등에는 영어로 쓴 외국인 이름도 달려 있었다. 김혜정 종무실장은 “외국인 신자도 더러 있다. 선원이 모던한 스타일이라 무척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얼마 전에는 신학생 몇 명이 왔다갔다고 했다. “건물 밖에서 우물쭈물하더라. 타종교 이해에 관한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사찰하면 울긋불긋한 문양이 낯설고, 약간 무섭기도 했는데 여긴 참 편안하다’고 하더라. 나중에는 법당에 앉아서 20분간 참선 체험도 하고 갔다.”
#변화의 징검다리로
2007년 11월에 완공한 뒤 상도선원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요즘은 사진작가를 비롯해 디지털 카메라 동호회까지 찾아올 정도다. 선원 방문객들은 “다시 오고 싶다” “주위 사람에게 소개해야겠다” “편하면서도 고요하고 경건하다” 는 인상기를 남긴다. 도심 사찰을 새로 짓는 스님들에겐 아예 견학 필수 코스가 됐다. 상도선원을 찾은 스님들은 “신선하다” “이런 창조적인 변화를 진작에 누군가가 해주길 바랬다”고 입을 모은다. 김 종무실장은 “상도선원을 구경하려는 스님이 사나흘에 한 분씩은 찾아온다. 특히 젊은 스님이 많다. 지금도 상도선원의 디자인을 벤치마킹해 불사 중인 사찰이 여럿 있다”고 자랑했다.
디자인과 스타일에 있어 상도선원은 ‘아낌없이 주는 사찰’이다. 찾아오는 이 누구에게나 모든 자료를 공개한다. 건물과 인테리어에 대한 사진도 맘껏 찍고, 아이디어도 얼마든지 가져가도록 한다. 미산 스님은 “우리나라의 불교적 전통미도 소중하다. 다만 도심 사찰의 건축문화를 바꾸는데 상도선원이 징검다리 구실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500년 후, 1000년 후의 불자들은 상도선원의 디자인을 통해 ‘2009년 한국 불교의 디자인’을 기억하지 싶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