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시론] '천안함' 대응조치 국제법적 문제들이창위 서울시립대 교수해양법학
푸른물
2010. 6. 24. 11:13
시론] '천안함' 대응조치 국제법적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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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4.08 22:10 / 수정 : 2010.04.08 23:28
- ▲ 이창위 서울시립대 교수해양법학회 부회장
북 소행 증거 나오면 국제법상 戰時 복구나 자위권 행사 가능하지만
한미연합사령관에 작전권 위임돼 있어 결국 유엔으로 가야 할 듯
천안함 침몰의 원인은 아직 불분명하다. 외부 충격의 개연성이 높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섣불리 예측하기엔 사태가 너무 엄중하다. 현재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조사하고 있다는데, 만약 외부 폭발을 입증하는 증거가 확보되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특정 국가가 고의(故意) 또는 과실(過失)로 천안함을 침몰에 이르게 한 것이라면, 국제법적 근거를 검토하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유엔헌장 제33조에 따르면 모든 국가는 국제분쟁을 외교교섭이나 심사, 중개, 조정, 중재재판, 사법적 해결 등 평화적 방법에 의해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런 해결의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경우, 국제법은 국가의 자력(自力)구제에 의한 강제적 분쟁해결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 피해국이 자체의 힘으로 해결을 시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가의 자력구제로 가장 대표적인 조치는 보복(報復·Retorsion)이나 복구(復仇·Reprisal)가 있다. 국제법상 보복은 흔히 생각하는 군사적 보복과는 다른 개념이다. 상대국 행위가 위법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취할 수 있는 적법한 조치로서, 원조 중단, 가해국 국적자 추방, 외교관계의 단절 등이 있다.
복구는 상대국의 위법행위에 대응한 조치로서 보복보다 강도가 더 높다. 최근에는 복구 대신에 대항조치라는 용어가 많이 쓰인다. 복구는 평시(平時) 복구와 전시(戰時) 복구가 있다. 2차대전 후 평시 복구에서 무력 행사는 국제법적으로 금지됐다. 평시 복구로 할 수 있는 조치는 조약의무의 정지, 자산의 동결, 선박 억류 등이 있다.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 금지도 여기에 속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남북 간엔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평시가 아닌 전시 복구의 적용도 고려할 수 있다. 전시 복구는 무력 행사가 수반되는 조치도 허용된다.
그러나 어뢰 공격이 침몰의 원인으로 판명되면, 보복이나 복구와 같은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그것은 전쟁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제법상 자위권(自衛權)의 행사가 허용된다. 자위권은 모든 국가에게 인정되는 정당한 권리로서 유엔헌장 제51조에 명시되어 있고, 1986년 국제사법재판소의 니카라과 군사활동 사건에 대한 판결 등 수많은 판례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군함에 대한 어뢰 공격은 명백한 무력 공격으로서 자위권의 행사 요건을 충족시키므로, 우리 군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평시작전권을 1994년에 미군으로부터 환수하면서 6개 핵심사항에 대해서는 단독 작전행사를 포기하고 한미연합사 사령관에 연합권한위임사항(CODA)으로 위임했다. 대북(對北) 자위권 행사는 바로 6개 핵심사항에 해당된다고 판단된다. 결국 우리 군이 단독으로 대북 군사제재를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조치는 유엔 안보리나 기타 분쟁해결 절차에 회부하는 정도로 국한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은 조치를 효율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분명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1946년 코르푸해협 사건이나 1988년 로커비 사건에서 알바니아와 리비아가 패소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국 확보된 증거 때문이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위기 때 소련의 양보도 유엔 안보리에 증거 사진이 제출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따라서 심증(心證)이나 정황만으로는 중대한 국제분쟁을 해결할 수 없고, 국제사회를 설득하기도 힘들다.
그런 점에서 먼저 증거를 확보한 뒤에 대응 조치를 논의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타당하다. 하지만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된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북한을 실효적으로 제재할 수 없다면, 군(軍)과 국민이 입을 상처는 상당할 것이고 그 후유증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앞으로 군과 정부에서 대응 조치의 법적 범위를 놓고 이견이 노출되고 국민 사이에서도 논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정략적 접근을 지양하고, 주권과 국기(國基)를 수호한다는 차원에서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