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이유없는 반항? 세상에 그런 건 없습니다"청원=김한수 기자 hansu@chosun.

푸른물 2010. 6. 11. 07:28

"이유없는 반항? 세상에 그런 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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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5.28 03:00

대안학교 성공교육기 책으로 펴낸 양업高 교장 윤병훈 신부
"교장들은 다 답답한데 교장이 신부라 더 답답하다며…
거칠게 상처 드러내던 아이들 진심으로 이해하는데 꼬박 7년"

"우리 사회는 모범생을 지나치게 강요합니다. 그래서 발소리를 크게 내면서 걸으면 야단치지요. 왜 그렇게 걷는지 묻지도 않고요. 그러나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라도 그들에게서 운전대를 빼앗으면 안 됩니다.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사랑을 주면 결국 능숙한 운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13년은 그걸 깨달아온 과정입니다."

충북 청원군 양업고등학교는 1998년 천주교 청주교구가 설립한 대안고등학교다. 한국 천주교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1821~1861) 신부의 이름을 딴 양업고는 한 학년 40명씩 전교생 120명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자율적인 교육을 받고 있다.

양업고 교장 윤병훈 신부는“틀에서 벗어나려는 학생들이 이유없이 괜히 반항하는 것이 아니다”며“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사랑을 주면 더 큰 날개로 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한수 기자
26일 오후 찾은 양업고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폐공장 부지를 활용해 건축한 학교 건물엔 담쟁이넝쿨이 덮여 있었고, 하얀 성모상(聖母像)이 서있는 작은 연못 옆 잔디밭에선 학생 밴드가 연주회를 준비하는 음악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최근 양업고의 성공교육기를 정리한 '발소리가 큰 아이들'(다밋출판사)을 펴낸 양업고 교장 윤병훈(60) 신부는 "이런 평화로운 풍경이 이뤄지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윤 신부는 충남대 농대를 나와 교사를 하다 뒤늦게 사제의 길을 걷게 됐다. 1983년 사제품을 받은 후에도 고교 윤리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1998년 양업고 설립부터 교장을 맡았다. "학교 울타리 밖에 있는 10~15만 청소년을 끌어안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길이었지만 막상 학교를 설립하고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코올 중독에 가까운 음주와 흡연, 무단결석, 가출 등이었다. 그동안 가정과 학교에서 입은 온갖 상처에 대한 아이들 나름대로의 저항방식이었다.

윤 신부 역시 그들을 이해하기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다.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 동생을 비난하는 큰 아들처럼 그 아이들을 비난하고 있었지요." 학생들 역시 "교장들은 다 답답한데 신부님은 교장에다 신부라서 더 답답하다" "대안학교라 다를 줄 알았는데 똑같다"며 대들었다. 이런 실랑이를 거쳐 그가 서서히 아이들을 이해하게 될 무렵, 학생들도 마음을 열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학교 입구의 '흡연터'를 없애자고 하더군요. 스스로 금연하고 학생들도 설득하겠다고요. 그 무렵부터 학교가 달라졌습니다."

해병대에 자원했다가 낙방한 졸업생이 후배들에게 "무단결석을 많이 했더니 해병대에서 안 받아 주더라"고 말한 뒤 무단결석도 사라졌다. 졸업생들도 하나 둘 홀로 서기 시작했다. 도너츠가게를 하면서 학교에 빵을 보내고, 쌀장사를 하면서 쌀을 보내고, 대학교에서 장학금 받았다며 대형TV를 보내오는 "번쩍 안아주고 싶은" 졸업생들이 생겼다. 첫해 입학생 40명 중 15명만 졸업했던 양업고는 이제 대안학교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올해 스승의날에는 대통령상도 받았고, 입학 경쟁률도 6:1에 이르게 됐다. 학교 설립 초창기의 문제가 거의 사라지면서 교정에도 평화가 찾아들었다. 그 사이 윤 신부도 교원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문자 그대로 '교육학 박사'가 됐다.

윤병훈 신부는 "비록 때는 늦을지 몰라도 우리 아이들은 계속 제대로 서고 있다"며 "학생들이 우리를 진정한 선생으로 만들어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