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통영 한산식당 '쑤기미탕'

푸른물 2010. 5. 26. 07:21

[김형우 기자의 군청앞 맛집] 통영 한산식당 '쑤기미탕'

스포츠조선=글ㆍ사진 김형우 기자


 경남지방에서 미식 기행지를 꼽자면 통영을 빼놓을 수 없다. 빼어난 경관의 한려수도는 관광지로서 뿐만 아니라 황금어장을 형성하고 있어 철마다 싱싱한 미식거리가 넘쳐난다. 봄에는 도다리쑥국, 여름엔 멸치-장어, 가을은 전어-방어, 겨울엔 굴과 물매기 등 계절을 대표하는 별밋거리가 줄을 잇는다. 여기에 시장통에서 말아주는 시락국과 충무할매김밥, 싱싱한 해물 안주가 한상 가득 오르는 '다찌' 등 여느 지방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별미와 식문화가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토박이 미식가들이 강력 추천하는 메뉴가 있다. 요즘 쉽게 맛볼 수 없는 '쑤기미탕'이 그것이다. '범치'로도 불리는 '쑤기미'는 흔히 '못생겨도 맛은 좋다'는 그런 어종이다. 쑤기미를 산 채로 토막내 매콤 시원하게 끓여 내는 쑤기미탕은 통영 등 남해안 일원의 미식가들에게는 최고의 별미로 통한다.


                 


 "먼저 국물 맛을 봐야 알지예. 내가 했다케서 그린기 아이라 맛은 아주 좋심미더. 서울, 울산 이런데서 오신 손님들이 매운탕 중에는 최고라꼬 하시데예(하하하…)."

쑤기미탕으로 이름난 통영 중앙시장 내 '한산식당' 유수연 사장(74)이 쑥스러운 웃음을 함께 버무려 내놓은 대답이다.

시장 통에서 수십 년 밥집을 해왔다는 유씨 할머니는 '억척스러움'과는 거리가 멀 정도로 인상이 고왔다. 갖은 고생 다 겪은 얼굴 치고는 후덕하고 환한 모습이 대번에 푸근한 정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모습이다.

한번 찾은 사람이라면 꼭 일행을 앞세우고 다시 찾게 된다는 집. 그 비결 중 상당 부분은 꾸밈없는 주인 할머니의 외모도 한 몫 했을 법하다.

이 집의 대표 별미 쑤기미탕은 그 이름부터가 생소하다. 쑤기미라는 생선 자체가 귀하기 때문이다. 특히 쑤기미는 청정 해역에서만 산란-서식하는 데다 요즘은 어획고마저 줄어 더 귀한 몸이 됐다.

쑤기미는 양볼락과의 바닷물고기로 본명은 '범치'이다. 흉측한 생김새에 범처럼 무서운 물고기라해서 얻은 이름이다.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 제주에선 '미역치', 여수 사람들은 '쐬미'라고도 부르는데 통영-고성 앞바다에서 주로 잡혀 이 지역 향토별미가 되고 있다.

바닷가 사람들 중에는 종종 '쑤기미'라는 별명을 얻는 경우가 있다. 못생겼다는 뜻보다는 독한 사람에게 붙여주는 게 일반적이다.


일찍이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쑤기미를 설명해두었다.

'손치어', '석어(쏘는 물고기)'는 '등지느러미에 강한 독이 있고 성이 나면 고슴도치처럼 되어 적이 가까이 가면 찌른다. 이것에 찔리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교 대상이 '아귀'에나 견줄 만큼 못생긴 쑤기미는 손질부터가 쉽지 않다. 도마 위에 오르자 난폭한 기질을 드러낸다. 입을 벌린 채 바르르 떨더니 이내 독을 가득 품은 등지느러미부터 곧추 세운다. 부챗살처럼 펼쳐진 등 가시는 고무장갑, 실장갑 등을 예사로 뚫을 만큼 드센 통에 다루는 데 각별한 주의가 따른다.

"힘이 좋아가 한번 톡 쏘였다카믄 손가락이 마비되고 눈물이 쏙 빠진다 아입니꺼. 요새는 내 힘이 딸려가 우리 사장님(아들 박기석씨ㆍ37)이 다 손질 해주지예."


싱싱한 쑤기미 만큼이나 중요한 게 매운탕 육수. 이 집은 생수에 무를 썰어 넣고 육수를 만든다. 여기에 된장 약간을 푼 다음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간장을 쓰면 짠맛이 나서 본래 시원한 맛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토막낸 쑤기미를 넣고 불을 높인다. 물이 얼추 끓으면 고추, 양파, 대파, 쑥갓, 미나리 등 야채와 마늘다짐, 고춧가루 등을 넣고 숨을 죽인다. 대략 15분 정도면 쑤기미탕이 완성된다. 더 끓이게 되면 쑤기미의 연한 육질이 해체돼 볼품이 없어진다.


 '못생겨도 맛은 끝내준다'는 쑤기미탕의 국물 맛은 어떨까. 한마디로 얼큰 걸쭉한 맛이 혀끝에 감기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뒷맛은 시원하다. 양립하기 힘든 그런 오묘한 맛이다. 육질 또한 독특하다. 껍질은 부드럽고 고소하다. 살코기는 부드럽게 녹아내리다가 끝에는 북어 보푸라기처럼 살짝 씹히는 뒷맛이 있다.


 "들착지근하지예. 백번 말해 봐야 모립니더. 일단 자셔 보셔야 압미더."

쑤기미는 아직 양식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 배를 띄워야 하는데 한 번 조업에 수십 마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한산도, 매물도, 욕지도 앞바다에 어장이 형성돼 있는데 한산식당은 삼천포(사천) 근해에서 잡은 것을 가져다 쓴다. 귀한 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다. 1kg에 1만8000원 선. 그래봐야 3인분 거리다.

"다른 고기는 아무리 비싸도 반은 남는데, 쑤기미는 반을 남기기 힘듭미더. 우리 집은 탕(1인)이 1만2000원이다 아입미꺼. 이것저것 치면 반이 안 남지예. 그래도 가격을 몬 올리겠습디더."

밑반찬도 유씨 할머니가 손수 챙긴다. 배추김치, 깍두기, 미역무침, 파래무침, 옛날식멸치볶음, 멸치 젓갈, 도라지나물, 시금치나물 등 화려하지 않지만 맛깔스런 밥반찬들이다.


유수연 할머니는 한산식당을 48세 되던 해에 열었다. 젊어 남편을 앞서 보내고 30대 초반부터 통영 중앙시장에서 야채, 생선장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만큼 고생을 겪었다. 장사가 너무 힘들어 시작한 밥집이 매운 손끝 덕분에 유명세를 얻게 됐다.


유 사장이 '할머니' 보다는 '아주머니'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만큼 건강한 피부를 지닌 데에는 나름의 비결이 있었다. 25년 전부터 매일 아침 먹어 왔다는 복국이 그것이다.


 "우리 갑장(동갑) 중에는 내가 제일 젊다 아입미꺼(웃음). 위염 고칠라꼬 약이라 생각하고 먹었는데, 그기 그래 몸에 좋더라고예."


유씨의 손맛은 현재 아들(6남매 중 다섯째)이 잇고 있다.

"요새는 우리 아들이 다 합미더. 복어요리 자격증도 있고, 몬 하는 게 없는데, 장개를 못 갔습미더. 인물도 미남인데…" 유씨 할머니는 요즘도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한다. 7시부터 복국 손님들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활 졸복을 써서 끓여낸 국물 맛이 아침 해장에 그만이다. 이밖에도 한산식당에서는 복매운탕(1만2000원), 복국(8000원), 아구수육(3만~4만원), 해물탕(2만5000~3만5000원) 등을 맛볼 수 있다.


바닷가 시장의 풍성한 맛 볼수 있어


 ▶이영민(45ㆍ통영시청 문화예술관광과 계장)


한산식당은 전통적인 시장통 음식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우선 바닷가 시장의 풍성함 속에 맛볼 수 있는 곳이라 통영의 느낌을 잘 반영하는 집이다. 거기에 흔치 않은 '쑤기미탕'을 솜씨 좋은 유씨 할머니의 손맛으로 맛볼 수 있어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추천하고 있다. 직원들, 손님들과도 가끔씩 들른다.






국물맛 그리울땐 가족-친구들과 찾아


 

▶김정화(37ㆍ통영시청 관광진흥담당)

 

청정해역을 둘러보고 중앙활어시장에서 생선을 구경한 후, 싱싱한 활어로 끓여 주는 음식을 맛보는 것은 최고의 미식기행이 된다. 한산식당은 그런 느낌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집이다. 할머니의 손맛과 국물 맛이 그리울 때면 가족, 친구들과 함께 즐겨 찾는 집이다.










< 통영의 이색 공간 >



그 밖의 통영 미식기행 3선
 

 ▶통영굴=이즈음 통영의 최고 미식거리는 굴이다. 통영만의 푸른 바다 속에서 막 건져 올린 싱싱한 굴을 횟감, 구이 등으로 맛보기에 제철이다. 통영의 굴은 수하식으로 양식된다. 양식이지만 바닷물에서 천연 양분만을 빨아들인다.

굴의 주산지라고 해서 아무 곳에서나 생굴을 맛볼 순 없다. 서호시장은 오전에 장이 파해 관광객이 이용하기에 쉽지 않다. 미륵도 입구인 통영여객선터미널 1층의 생굴유통센터 '대양수산'에서 생굴, 껍데기째 찐 굴을 맛볼 수 있다. 전화 주문 택배도 가능하다. 1kg에 8000원 선. (055)644-4980

 ▶통영 다찌=통영의 또 다른 명물은 '다찌'. 다찌란 술 한 병을 시키면 안주가 무제한 따라 나오는 통영식 술집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선술집을 뜻하는 다찌노미에서 비롯됐다는 게 통영사람들의 추정이다. '통영을 제대로 알려면 다찌 집을 들러야 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통영의 식문화, 나이트 문화의 상징쯤으로 통한다. 통영에는 무전동 '호두나무 실비(055-646-2773)' 등 20여 곳의 다찌 집이 성업 중이다. 4만원(2인 기준)이면 소주(한 병에 1만원)와 맥주(한 병에 6000원)를 얼음이 담긴 파란 플라스틱통에 섞어 담아 내온다. 한상 가득 채워진 해산물 안주도 기본.


▶제철 생선=통영 미식가들 사이 제철 생선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집이 있다. 무전동 대송일식(055-648-0797)이 그곳이다. 이 집 김금자 사장은 철들 무렵부터 생선을 만지기 시작해 다찌집-일식집 운영 등으로 수십 년 노하우를 쌓았다. 일식 정찬과 함께 별미들을 맛볼 수 있다. 겨울철 복대구, 봄철 도다리쑥국, 4~5월 조개, 1~2월 돌도다리, 6~7월은 농어와 다금바리, 8~10월은 도미, 감성돔 등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