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한산식당 '쑤기미탕'
[김형우 기자의 군청앞 맛집] 통영 한산식당 '쑤기미탕'
쑤기미탕으로 이름난 통영 중앙시장 내 '한산식당' 유수연 사장(74)이 쑥스러운 웃음을 함께 버무려 내놓은 대답이다. 시장 통에서 수십 년 밥집을 해왔다는 유씨 할머니는 '억척스러움'과는 거리가 멀 정도로 인상이 고왔다. 갖은 고생 다 겪은 얼굴 치고는 후덕하고 환한 모습이 대번에 푸근한 정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모습이다. 한번 찾은 사람이라면 꼭 일행을 앞세우고 다시 찾게 된다는 집. 그 비결 중 상당 부분은 꾸밈없는 주인 할머니의 외모도 한 몫 했을 법하다. 이 집의 대표 별미 쑤기미탕은 그 이름부터가 생소하다. 쑤기미라는 생선 자체가 귀하기 때문이다. 특히 쑤기미는 청정 해역에서만 산란-서식하는 데다 요즘은 어획고마저 줄어 더 귀한 몸이 됐다. 쑤기미는 양볼락과의 바닷물고기로 본명은 '범치'이다. 흉측한 생김새에 범처럼 무서운 물고기라해서 얻은 이름이다.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 제주에선 '미역치', 여수 사람들은 '쐬미'라고도 부르는데 통영-고성 앞바다에서 주로 잡혀 이 지역 향토별미가 되고 있다. 바닷가 사람들 중에는 종종 '쑤기미'라는 별명을 얻는 경우가 있다. 못생겼다는 뜻보다는 독한 사람에게 붙여주는 게 일반적이다.
일찍이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쑤기미를 설명해두었다. '손치어', '석어(쏘는 물고기)'는 '등지느러미에 강한 독이 있고 성이 나면 고슴도치처럼 되어 적이 가까이 가면 찌른다. 이것에 찔리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교 대상이 '아귀'에나 견줄 만큼 못생긴 쑤기미는 손질부터가 쉽지 않다. 도마 위에 오르자 난폭한 기질을 드러낸다. 입을 벌린 채 바르르 떨더니 이내 독을 가득 품은 등지느러미부터 곧추 세운다. 부챗살처럼 펼쳐진 등 가시는 고무장갑, 실장갑 등을 예사로 뚫을 만큼 드센 통에 다루는 데 각별한 주의가 따른다. "힘이 좋아가 한번 톡 쏘였다카믄 손가락이 마비되고 눈물이 쏙 빠진다 아입니꺼. 요새는 내 힘이 딸려가 우리 사장님(아들 박기석씨ㆍ37)이 다 손질 해주지예."
싱싱한 쑤기미 만큼이나 중요한 게 매운탕 육수. 이 집은 생수에 무를 썰어 넣고 육수를 만든다. 여기에 된장 약간을 푼 다음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간장을 쓰면 짠맛이 나서 본래 시원한 맛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토막낸 쑤기미를 넣고 불을 높인다. 물이 얼추 끓으면 고추, 양파, 대파, 쑥갓, 미나리 등 야채와 마늘다짐, 고춧가루 등을 넣고 숨을 죽인다. 대략 15분 정도면 쑤기미탕이 완성된다. 더 끓이게 되면 쑤기미의 연한 육질이 해체돼 볼품이 없어진다.
쑤기미는 아직 양식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 배를 띄워야 하는데 한 번 조업에 수십 마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한산도, 매물도, 욕지도 앞바다에 어장이 형성돼 있는데 한산식당은 삼천포(사천) 근해에서 잡은 것을 가져다 쓴다. 귀한 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다. 1kg에 1만8000원 선. 그래봐야 3인분 거리다. "다른 고기는 아무리 비싸도 반은 남는데, 쑤기미는 반을 남기기 힘듭미더. 우리 집은 탕(1인)이 1만2000원이다 아입미꺼. 이것저것 치면 반이 안 남지예. 그래도 가격을 몬 올리겠습디더." 밑반찬도 유씨 할머니가 손수 챙긴다. 배추김치, 깍두기, 미역무침, 파래무침, 옛날식멸치볶음, 멸치 젓갈, 도라지나물, 시금치나물 등 화려하지 않지만 맛깔스런 밥반찬들이다.
유수연 할머니는 한산식당을 48세 되던 해에 열었다. 젊어 남편을 앞서 보내고 30대 초반부터 통영 중앙시장에서 야채, 생선장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만큼 고생을 겪었다. 장사가 너무 힘들어 시작한 밥집이 매운 손끝 덕분에 유명세를 얻게 됐다.
유 사장이 '할머니' 보다는 '아주머니'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만큼 건강한 피부를 지닌 데에는 나름의 비결이 있었다. 25년 전부터 매일 아침 먹어 왔다는 복국이 그것이다.
유씨의 손맛은 현재 아들(6남매 중 다섯째)이 잇고 있다. "요새는 우리 아들이 다 합미더. 복어요리 자격증도 있고, 몬 하는 게 없는데, 장개를 못 갔습미더. 인물도 미남인데…" 유씨 할머니는 요즘도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한다. 7시부터 복국 손님들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활 졸복을 써서 끓여낸 국물 맛이 아침 해장에 그만이다. 이밖에도 한산식당에서는 복매운탕(1만2000원), 복국(8000원), 아구수육(3만~4만원), 해물탕(2만5000~3만5000원) 등을 맛볼 수 있다.
▶이영민(45ㆍ통영시청 문화예술관광과 계장)
▶김정화(37ㆍ통영시청 관광진흥담당)
청정해역을 둘러보고 중앙활어시장에서 생선을 구경한 후, 싱싱한 활어로 끓여 주는 음식을 맛보는 것은 최고의 미식기행이 된다. 한산식당은 그런 느낌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집이다. 할머니의 손맛과 국물 맛이 그리울 때면 가족, 친구들과 함께 즐겨 찾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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