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화

'글자의 비밀' 벗기니, 핏기 없던 유물에 溫氣가…춘천=김경은 기자 eun@ch

푸른물 2010. 5. 22. 12:22

'글자의 비밀' 벗기니, 핏기 없던 유물에 溫氣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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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5.19 03:14

'일본에 있는 한국金石文 자료' 펴낸 김용선 교수
항아리 안에 해와 달이 들어있다 취해서 천지 속에 누워 있구나
도자기·기와·묘비… 그 위에 새겨진 글씨 유물과 주인의 사연 당시 생활상 생생하게

1993년 '고려 묘지명(墓誌銘) 집성'을 출간했던 김용선(59) 한림대 교수가 최근 '일본에 있는 한국금석문 자료'(한림대출판부)를 펴냈다. 한국 땅에서 제작·사용·출토됐지만 지금은 일본에 있는 금석문(金石文) 730여 점을 정리한 책이다.

금석문은 금속이나 돌로 만든 물건에 쓰여 있는 글 또는 글씨를 가리킨다. 토기·도자기·기와·벽돌에 적혀 있는 것은 물론이고 나무로 만든 장승이나 떡판에 새겨져 있는 글씨도 넓은 의미에서 금석문에 속한다. 17일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금석문은 종이나 비단에 적힌 문헌사료는 결코 보여주지 못하는 당시의 생활모습과 생각 등을 담고 있다"며 "금석문 연구는 핏기 없는 유물에 온기를 불어넣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7년 일본 교토의 골동품 거리에서 혜경궁 홍씨의 증조부인 홍중기(洪重箕)의 백자묘지명 7점을 발견했다는 김용선 교수는“우리 문화재를 무조건 돌려달라고 요청하기에 앞서 어디에 얼마만큼 소장돼 있는지부터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은 기자 eun@chosun.com
"도자기나 불상(佛像)은 감상자의 입장에서 보면 색(色)과 선(線)의 아름다움에만 관심을 갖게 되고 이 유물들을 누가 언제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지나쳐버립니다. 하지만 묘지명에는 묘지 주인의 출신·조상·이력이 기록돼 있고, 도자기의 경우 생산지와 생산연대·소비자·사용처 등이 쓰여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김용선 교수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7년 8월부터 6개월간 도쿄대 한국 조선문화연구실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일본 내 60여 군데의 박물관과 미술관, 연구소, 사찰·신사 등을 찾아다니며 우리 금석문을 조사했다. 조사를 끝낸 유물은 종류와 시기별로 나눠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각 유물에 새겨진 명문(銘文)도 일일이 옮겨 달았다.

김 교수는 바닥 안쪽에 '五衛都摠府(오위도총부) 弘治元年(홍치원년)'이란 글자가 새겨진 거북이 모양의 해시계를 가리키며 "오위도총부는 조선시대 중앙군인 오위를 지휘하던 총사령부이고, 홍치원년은 1488년을 뜻한다. 이 글자를 통해 해시계의 제작연대와 사용처를 확실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18세기에 만들어진 연적은 역시 바닥에 쓰여진 '分院(분원)'이란 글자를 통해 조선시대 도자기를 생산하는 관요(官窯)가 있던 경기도 광주에서 생산됐음을 알게 된다. 17~18세기에 제작된 백자에는 '항아리 안에 해와 달이 들어 있다/취해서 천지 속에 누워 있구나'란 시구가 적혀 있어 당시 사람들의 호방함을 읽을 수 있다.

김 교수는 조사 과정에서 '잃어버린 피붙이를 되찾은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2007년 10월 교토대 종합박물관에서 고려시대 문관이자 명필인 장수(張脩·1079~1156)의 묘지명 반쪽을 찾아낸 것이다. 이 묘지명은 절반으로 깨져 반쪽은 탁본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나머지 반쪽은 행방조차 묘연한 상태였다. 김 교수는 "탁본만 남아 있는 이 묘지명의 전반부 실물을 확인하는 일이 과제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김용선 교수는 "일본 전역을 조사하면서 뛰어난 우리 유물이 너무 많아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며 "이 책 출간을 계기로 우리 정부와 학자들이 해외에 있는 한국 금석문 연구의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본격적인 연구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