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사랑을 놓치다 - 윤제림(1960~ )

푸른물 2010. 3. 9. 12:09

사랑을 놓치다 - 윤제림(1960~ )

… 내 한때 곳집 앞 도라지꽃으로

피었다 진 적이 있었는데,

그대는 번번이 먼 길을 빙 돌아다녀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내 사랑!

쇠북 소리 들리는 보은군 내속리면

어느 마을이었습니다.

또 한 생애엔,

낙타를 타고 장사를 나갔는데, 세상에!

그대가 옆방에 든 줄도

모르고 잤습니다.

명사산 달빛 곱던,

돈황여관에서의 일이었습니다.


그대에게 들켜야 하건만, 어느 지근(至近)에서 나도 그대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갈림길의 우연 아니라도 인연은 교합잔상을 거듭 허물어뜨리는 것. 그리하여 이 어긋남으로 서로를 영영 알아보지 못해도 어쩔 수 없는 것. 반쯤 구름 펼친 하늘 아래 그대가 끌고 내가 탄 우마차가 간다. 마부인 나도 과객인 그대도 서로를 모르는 채! <김명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