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라이터 '를 만나다] [7] 시인들 팬레터 받은 한시(漢詩) 번역가 신용
'파워 라이터 '를 만나다] [7] 시인들 팬레터 받은 한시(漢詩)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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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1.30 03:29
고전 문학자 정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한시 현대 한국어로 번역 고전문학서 30권 육박
출판계 금언(金言) 중에 '제목이 80%'라는 말이 있다. 역대 잘 붙인 제목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게 '미쳐야 미친다'이다. '미칠(狂) 정도의 열정을 가져야 일정 경지에 도달할(及) 수 있다'는 맥락에서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을 일별한 이 책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사람이 벽(癖)이 없으면 쓸모없는 사람일 뿐이다. 대저 벽이란 글자는 질(疾)에서 나온 것이니, 병 중에서도 편벽된 것이다. 하지만 독창적인 정신을 갖추고 전문 기예를 익히는 것은 왕왕 벽이 있는 사람만이 능히 할 수 있다."
박제가(1750~1805)의 이 말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 바로 책의 저자인 정민(49) 한양대 국문과 교수이다. '조선 후기 고문론(古文論·문장론) 연구'로 한양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정 교수는 《한시 미학 산책》(1996년)에서 올 초 《성대중 처세어록》까지 30권에 육박하는 고전문학 관련서를 내왔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2002)는 40만부가 팔렸고, 《미쳐야 미친다》(2004)와 《다산선생 지식경영법》(2006) 같은 베스트셀러는 지금도 찾는 이들이 많다.
"첫 저서인 《한시 미학 산책》이 3만부가량 나갔는데, 당시 시인들의 팬레터를 적잖이 받았습니다. 한시를 현대적 한국어로 번역한 것을 보고 시인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고 놀랐나 봅니다."
- ▲ 《미쳐야 미친다》의 저자 정민 한양대 교수는“고전은‘오래된 미래’이며, 거기에 인생의 답이 다 있다”고 말했다./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정 교수의 번역문은 원문의 난이도에 상관없이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으로 정평이 나있다.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가 문장이론이어선지 글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내용을 담는 그릇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습니다."
국문학도 시절엔 원고지를 끼고 다니던 시인 지망생이던 그는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 문학평론 분야의 최종심까지 오른 실력파이다. "박목월 선생이 한양대에 계셨지요.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고만 쓰셨지 나그네가 왜 길을 나섰는지는 언급이 없지요. 문학의 메시지보다는 이미지의 결과 언어의 짜임에 방점을 두셨던 분인데, 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 교수는 대학 4학년 2학기에 한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고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한시(漢詩) 전부와 4개 장에 이르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까지 줄줄 외던 그였지만 첫 시간에 《맹자》가 한 줄도 해석이 안 되는 자신의 실력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7년 동안 죽어라고 한문 공부를 했다.
고전문학자 중에는 고문(古文)의 '현대적 재해석'을 중시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정 교수는 반대다. 그는 "옛 시인의 마음속으로 제대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최우선시하기에 지금 내 얘기를 하기 위해 옛 글을 끌어오는 시도를 한 적은 전혀 없다.
정민 교수가 가장 좋아하고 또 영향을 많이 받은 이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이다. "연암은 인문 정신 그 자체입니다. 연암을 만난 뒤 공부의 목적도 바뀌었고, 제 정신의 힘과 급(級)도 달라졌지요."
그는 한문으로 기록돼 전해오는 700~800편의 여행기 중에서 《열하일기(熱河日記)》가 단연 최고이며, 한문 또한 중국에서도 인정하는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정 교수의 《비슷한 것은 가짜다》(2003)는 바로 '연암 꼼꼼히 읽기'의 산물이다. 이 책은 연암에 대한 좋은 길잡이를 자임하고 있다. "스토리 밑에 깔린 깊은 뜻까지 이해하려면 실력 있는 가이드의 도움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정민 교수는 왜 고문(古文)의 벽(癖)에 빠진 것일까. "고전은 '오래된 미래'입니다. 첨단과학기술의 시대이지만 인간의 생로병사는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고전에 답이 다 있어요. 직접 읽으면 알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