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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은 나의 힘’ 해외작가 탐방 3 - 미우라 시온 (일본) [중앙일보] 기

푸른물 2009. 9. 8. 17:52

상상력은 나의 힘’ 해외작가 탐방 3 - 미우라 시온 (일본) [중앙일보]

2009.08.10 01:21 입력 / 2009.08.10 02:32 수정

“경쾌한 스토리텔링, 만화에서 배웠다”

일본 도쿄 치요다구에 있는 보일드에그스 사무실에서 만난 미우라 시온(33)은 “한국 드라마 ‘궁’과 ‘대장금’을 재미있게 봤다”고 말했다. 블로그에 쓴 글을 모아 이미 여러 권의 에세이집 책을 발표한 그는 “블로그는 스트레스를 푸는 놀이 공간”이라고 했다.

10년 전, 일본의 출판사 하야카와쇼보(早川書房)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무라카미 다쓰로(村上達朗·현 보일드에그스 대표)씨는 신입 편집자를 뽑는 시험의 작문 심사를 맡았었다. 당시 작문의 주제는 ‘10년 후의 내 모습’. 수많은 응시생의 글 중에 외딴 성(城)에 사는 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글을 받기 위해 수많은 적들(다른 출판사 편집자들)과의 코믹하고 눈물겨운 모험을 그린 글이 있었다.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깜찍한 상상력과 발랄한 전개가 단연 발군이었죠. 작문 점수는 후하게 줬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최종면접에선 떨어졌더군요.” 무라카미 씨의 말이다.

출판사 편집자를 꿈꾸었으나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여학생, 그가 바로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으로 2005년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 미우라 시온(三浦しをん·33)이다. 미우라의 남다른 재능을 눈여겨본 무라카미 씨는 후에 그녀를 찾아가 “글을 직접 쓰라”고 권했다. 미우라 씨가 소설가로 데뷔하게 된 계기다.

만화적 상상력. 다양한 캐릭터. 흡인력있는 스토리텔링…. 지난 10년 동안 10여 권의 소설을 발표한 미우라 씨에게 따라붙는 평가다. 도쿄에서 기자가 만난 그녀는 스스로를 ‘오타쿠’라 말하며 “만화가 내 문학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만화책을 얼마나 즐겨봤나.

“40대 이하 일본인이라면 모두 만화책을 읽으며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 그중에서도 아주 심했다. 중·고등학교에선 학년을 통틀어도 첫 손에 꼽히는 ‘만화광’이었다(웃음). 한 달에 평균 60권 정도를 봤다. 대학 때도 만화방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많았다. 지금도 ‘멜로디’ 등 만화잡지를 즐겨 읽는다.”

-만화책이 현재의 창작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

“만화가 아니었다면 지금 글을 쓰는 나도 없었을 것 같다. 만화를 꾸준히 읽어온 덕분에 테마나 에피소드를 쉽게 찾는 편이다. 일본만화는 오래 전부터 가족·직장 문제는 물론 외롭고 소외된 아이들 이야기 등 일상생활의 다양한 인간관계를 다룬 것들이 많았다. 만화는 문학에 비해 독자들에게 훨씬 쉽고 가까이 다가가는 힘을 갖고 있다.”

-작가보단 편집자를 꿈꾸었는데.

“ 만화책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무라카미 씨(현재 그의 에이전트다)가 글을 써보라고 하기 전까지 내가 글을 잘쓴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신의 작품엔 어중이 떠중이가 모인 육상부(『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처럼 실패하고 부족한 변두리 인생이들 얘기가 유난히 많은데.

“ 일상에서 사소한 좌절을 겪는 보통 사람들이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계속 비슷한 얘기만 쓰는 것 만큼 지루한 일은 없다.”

-신작 『검은빛』(17일 국내 출간예정)은 경쾌한 톤의 전작과 많이 다르다.

“대체적으로 밝고 코믹한 소재로 글을 써왔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느껴질 때가 있다. 『검은빛』은 삶의 또다른 측면을 얘기하기 위해 택한 작품이다. 무겁고 어두워 내 자신을 추스릴 수 없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을 정도다.”

-이 작품엔 아동학대·강간·살인 등 다양한 폭력이 등장한다.

“폭력이 우리 일상생활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에 의해 우리의 감정이 어떻게 휘둘리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다치게 한 사건은 잘 기억하면서 남을 괴롭힌 것에 대해서는 잘 잊는다. 모순이다. 그런 삶의 풍경을 드러내고 싶었다.”

-자신의 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을 꼽는다면.

“즐겁게 쓰고, 독자들의 호응이 제일 좋은 작품은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였다. 만화로도 그려진 이 작품은 현재 영화로도 만들어져 11월에 개봉될 예정이다. 지난 5월에 일본에서 출간된 『하느님이 사라지다』도 산에서 나무 깎으며 느긋하게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렸는데, 쓰는 동안 행복해서 좋은 작품이었다.”

-블로그 글을 모아 에세이도 열 권 가까이 냈는데.

“소설을 쓰기 전에 무라카미 씨의 권유로 보일드에그스닷컴(www.boiledeggs.com)에 1주일에 한 번씩 글을 연재했다. 내게 블로그는 놀이공간이다. 책과 사람이야기, 가족이야기 등을 가벼운 마음으로 수다떨듯이 쓴다. 에세이는 소설과 달리 그때 그때 벌어진 일을 주관적 시점으로 쓸 수 있어 좋다. 블로그에 썼던 에피소드를 상상으로 발전시켜 소설에 쓰기도 한다.”

-대학 때 고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소설(『월어』)로도 썼다. 편집자를 꿈꾸다가 작가가 된 걸 보면 책과 가까운 인연이었나보다. 책이란 당신에게 무엇인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 책을 안 읽는 날은 상상할 수 없다. 어릴 때부터 항상 집에 책이 있었다. 책은 내 생활의 일부다. (미우라 씨는 직접 밝히길 극히 꺼렸지만 그녀의 부친은 일본 고대문학에 정통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만화책을 즐겨 읽고, 야쿠자 영화와 호모소설을 즐긴다는 ‘엉뚱한’ 그녀에게 가장 존경하는 작가를 물어보았다. 대답은 “마루야마 겐지(64)”였다.

도쿄 글·사진=이은주 기자


◆미우라 시온=1976년 도쿄 출생. 와세다대 제1문학부 연극영상화과 졸업. 2000년에 구직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장편소설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로 데뷔. 그 외 『월어(月魚)』,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는』, 『옛날이야기』,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로맨스소설의 7일』, 『비밀의 화원』, 『그대는 폴라리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