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슬으슬한 괴담 따라쓰다 소설가 됐죠”
일본 도쿄 신초샤(新潮社) 사옥에서 만난 모리미 도미히코. ‘일본판타지노벨대상’을 받으며 데뷔한 데 대해 “커트라인에 턱걸이했다”며 “덕분에 소설가가 돼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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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다다미 넉장 반 세계 일주』등 신작을 발표하면서 그는 자신만의 ‘판타지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유쾌하고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를 배경으로 현실과 망상이 뒤섞인 제3의 공간을 통해 상상력을 펼쳐 보인 것이다.
연애 판타지에서부터 ‘전설의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으슬으슬한 기담까지 아우르는 그의 상상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최근 그를 일본 도쿄에서 만났다.
-코믹한 터치의 『태양의 탑』이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와 달리 『여우 이야기』는 정반대의 분위기다. 취향이 변했나.
“아니다. 원래 내가 좋아해서 자주 쓰던 작품은 『여우 이야기』처럼 별로 유쾌하지 않은 류였다. ‘일본판타지노벨대상’에 응모할 때 전혀 다른 분위기의 두 작품을 응모했는데, 기존 취향과 다르게 써본 『태양의 탑』이 최종 후보에 남아 스스로도 놀랐다.”
-『여우 이야기』는 서늘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독특하다. 기담(奇談)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 때 괴담이라는 걸 종종 읽으며 우치다 햣켄(<5185>田百間)에게 매료됐다. 그의 작품을 모방해서 글을 쓰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우치다 햣켄, 1889~1971. 나츠메 소세키 문하의 소설가·문필가. 공포감을 표현한 소설과 독특한 유머가 넘치는 수필 등으로 유명하다.)
- 대학생 주인공을 많이 쓰는데.
“유쾌하고 약간은 엉뚱한 이야기엔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게 제일 좋다.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어서다. 대학생은 어른이지만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기성세대와 경계가 애매모호한 것도 좋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든지 하는 복잡한 문제에도 휘말릴 일이 없다(웃음).”
-교토는 당신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으로 일컬어지는데.
“일본인이라면 교토에 대해 동경이나 환상을 안고 있는 사람이 많다. 평범한 도시일 뿐이지만 ‘교토니까 이런 신비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며 너그럽게 받아들여준다.”
-고풍스러운 문장은 어디서 온 것인가.
“대학생 때 옛날의 쇼와 초기나 메이지 시대 작품을 가끔 읽었다. 덕분에 예스런 문체가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모리미체는 이런 것’이라는 것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
-당신의 상상력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책과 애니메이션. 어머니가 책을 참 좋아하는 분이셨다. 내가 글쓰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고 원고지를 처음 사다주셨다. 미야자키 하야오, 오시이 마모루 같은 애니메이션 감독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는 역시 우치다 햣켄이다. 난 현실적인 건 잘 못쓴다. 그래서 일상적인 부분만 최대한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나머지 부분은 내 멋대로 쓰는 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일상적인 배경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알지 못하는 세계로 들어가고, 다시 거기서 현재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얘기다.”
-블로그에 ‘도미히코 씨’라는 3인칭 주인공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내게 블로그는 작가인 도미히코씨를 재료로 노는 공간이다. 블로그는 작품을 쉴 때 독자들에게 잊혀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시작했다. 3인칭으로 쓰면 여러모로 거리감을 둘 수 있어 좋다.”
-도서관 사서로도 일한다고 들었다.
“ 다른 직업없이 ‘오로지 소설뿐’ 이라고 생각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작품도 경직될 것 같아 두렵다. 범생이같은 내 성격엔 지금 이대로 일하며 글쓰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글·사진 도쿄 = 이은주 기자
◆모리미 도미히코=1979년 일본 나라현 출생. 교토대 졸업 뒤 대학원(농학연구과) 수료. 대학원생이던 2003년 『태양의 탑』 으로 데뷔. 2006년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로 제137회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고 제20회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받았다. 그 외 작품으로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 , 『달려라 메로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