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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눈… 역사의 비극이 끓는다손정미 기자 jmson@chosun.com 기자의 다

푸른물 2009. 7. 19. 09:22

불타는 눈… 역사의 비극이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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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7.07 03:18

국립현대미술관 선정 '올해의 작가' 서용선 특별전
김시습과 단종, 6·25전쟁 등 다뤄

얼굴과 온몸에 화상(火傷)을 입은 것 같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 동공이 풀린 듯, 하늘을 원망하는 듯 매월당은 핏빛 어린 눈으로 허공을 주시한다. 보는 사람은 저절로 소름이 돋는다.

서양화가 서용선이 1990년에 완성한 작품 〈심문, 노량진, 매월당〉에 등장하는 김시습의 모습이다.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죽어간 사육신(死六臣)과 관직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간 매월당에서 역사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비극을 통해 인간의 실존에 대해 진지하게 들여다볼 것을 요구한다. 작가는 "비극이야말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라고 말한다. 작품 〈심문〉(2007)에서는 이들을 친국(親鞫)하는 자의 얼굴이 수양대군인지 단종인지 분명치 않아 역사와 비극의 주체와 객체에 대해 묘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 중인 서용선전(展)에는 이렇게 역사의 현장을 담은 회화들이 관람객에게 말 걸기를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용선을 '2009 올해의 작가'로 선정하면서 기획한 것으로,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품의 흐름을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95년부터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에 기여하거나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준 작가를 '올해의 작가'로 선정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올해의 작가’ 서용선의〈빨간눈 자화상〉(2009). 자화상의 표정처럼 서용선은 서울대 교수직을 버리고 전업 작가의 길을 택하는 결연한 선택을 했다./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51년생인 서용선에게 단종뿐 아니라 6·25전쟁도 외면할 수 없는 역사적 비극이었다. 서울 미아리에서 살 때에는 동네 아이들이 공동묘지에서 나온 해골을 갖고 놀 정도였다. 작가는 "엄청난 사람이 죽은 6·25전쟁을 정면으로 그린 작품이 별로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면서 전쟁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끊긴 한강대교와 전쟁으로 몸부림치는 인간상을 담은 〈희생〉이나 〈수용소〉 등이 그렇게 그려졌다.

서용선의 최근 작품은 역사를 넘어 신화(神話)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마고성 사람들〉(2009)은 우리 민족의 뿌리를 마고할미에 두고 상상력을 펼쳐보이고 있다. 벌거벗은 몸으로 묵묵히 설산(雪山)을 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고난과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생동감과 상상력이 묻어 나온다.

서용선은 작년 작품에 전념하기 위해 서울대 미대 교수직을 과감하게 내던졌다. 좋은 작가가 되고자 했던 꿈에서 자꾸 멀어져 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었다. 작가에게 '교수를 그만둔 것을 후회해보지 않았느냐'고 묻자, "교수를 그만두는 것은 오래전부터 생각했는데 너무 늦게 결심한 것 같아 오히려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서 나오니 그림을 그릴 때 형식에서 보다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면서 "특히 전에는 느끼지 못하던 자연이 절절하게 마음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산이라고 해서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지리산을 쳐다볼 때 푹 눅은 인생처럼 가깝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강의에 쫓기던 때보다 작업시간이 많아진 그는 "풍경화를 주제로 한 전시도 열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9월 20일까지. 관람료 3000원. (02)2188-6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