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A씨가 딸의 한국 여권을 보여주자 “두 개의 여권에 기재된 생일이 왜 다르냐”고 물었다. 당시 진땀을 흘리며 입국심사대를 통과했던 A씨는 “불법 체류를 하다 들킨 것 같은 대우를 받아 화가 났었다”고 털어놓았다.
A씨의 사례는 한국 출생신고 관련 법규 때문에 어떤 불편이 빚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행 대법원 가족관계등록예규는 해외에서 태어난 자녀의 출생신고를 할 경우 가족관계등록부 ‘출생연월일’ 란에 현지 출생 시각을 한국 시각으로 환산해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현지 출생 시각은 ‘일반등록사항’ 란에 참고사항으로 기록될 뿐이다.
그 결과 시차가 많이 나는 지역에서는 현지에 등록된 생일과 한국에 등록된 생일이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미국 뉴욕에서 3월 9일 오후 1시 태어났다면 미국 여권이나 사회보장번호를 받을 때 생일은 9일로 기재되지만 가족관계등록부에는 10일로 기록된다. 12월 31일 오후에 출생했다면 다음 해 1월 1일로 출생연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대법원 측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통일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시차 환산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현보 사법등기심의관(판사)은 “음력을 쓰는 베트남에는 2월 30일이 있고 이집트는 이슬람력을 사용하는 등 현지 시각을 쓰기 힘든 나라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두 개의 생일’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이 적지 않다. 여권뿐 아니라 각종 공문서상의 생일이 달라 증명서를 따로 첨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 교민들의 인터넷 사이트나 포털 사이트 카페 등에는 출생신고 절차가 번거롭다거나 생일이 다른 데 따른 불만을 털어놓는 글들이 게시되곤 한다. “아이의 한국·미국 생일이 다른데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느냐”는 문의부터 “서양에서는 본인인지 확인할 때 이름과 생일로 하기 때문에 한국 생일을 정정하는 게 낫다”는 충고까지 다양하다.
미국에 사는 한 한인 주부는 다음 카페에 “구청 직원이 서머타임(일광 절약 시간제)을 적용하지 않아 한 시간 차이로 출생 날짜가 달라졌다. 소명자료를 내서 정정을 하라고 하는데 답답하다”는 글을 올렸다. 주한 프랑스대사관 영사과 측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들이 한국에서 고교나 대학을 마친 뒤 다시 유학을 가면서 ‘현지 학적과 한국 학적의 생일이 다른데 신원 확인을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문의를 종종 해온다”고 전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에 주민등록을 한 이중국적자 수는 5만여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두 개의 생일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프랑스처럼 현지에서 태어나도 자국 국적을 주지 않는 나라들도 있는 만큼 이중국적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법무부 김종호 체류관리과장은 “생일이 다르다는 것은 신원이 다르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출입국 ‘블랙 리스트’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국 시각 출생신고’ 규정이 글로벌 시대에 역행하는 것인 만큼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철우(법사회학) 교수는 “국가 간 인구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출생연월일 등 신원에 관한 기록이 당사자의 법률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며 “행정상의 이유로 개인의 신원 문제에 무신경하게 대응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