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아침논단] 인공 생명체를 만들어 낸 大사건복거일 소설가

푸른물 2010. 6. 15. 16:33

아침논단] 인공 생명체를 만들어 낸 大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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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6.07 21:58

복거일 소설가

美과학자들 지구역사상 첫 부모 없는 생명체 창조
부작용 있겠지만 혜택이 훨씬 클 것
인간 진화 방향 근본적으로 바꿀 듯

천안함의 비극과 지방선거에 마음이 쏠려서, 지난 두세 달 동안 우리 눈길은 나라 안에 머물렀다. 그 사이에도 바깥세상에선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일들이 여럿 일어났다. 미국 과학자들인 크렉 벤터와 해밀턴 스미스가 살아있는 생명체를 만들어냈다고 지난 5월 20일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들 가운데 하나다. 이제 인공적으로 생명을 창조하는 합성 생물학(synthetic biology)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벤터와 스미스는 실험실에서 늘 쓰이는 화학약품들로 DNA 조각을 합성했는데 이 조각엔 1000개가량 되는 유전자들이 들어 있다. 그들은 '마이코플래스마 마이코이데스'라는 박테리아의 유전체에서 유전자 14개를 빼고 자신들이 설계한 DNA 몇 개를 표지 삼아 대신 넣었다. 이어 유전자들이 제거된 박테리아에 그 DNA 조각을 주입했다. 그러자 그 박테리아가 살아나서 번식했다. 지구에 생명체가 나타난 뒤 처음으로 부모 없는 생명체가 태어난 것이다.

이번 실험은 생명의 본질이 '정보 처리'라는 점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생명 현상은 유전자들 속에 담긴 정보들이 처리되는 것이다. 유전 정보들은 4개의 글자들과 64개의 낱말들로 이루어진 화학적 언어로 쓰여진다. 4개의 글자들은 DNA를 이루는 염기들인 아데닌(A), 타이민(T), 사이토신(C), 그리고 구아닌(G)이다. DNA의 정보들은 글자 셋으로 표현되는데, 주로 아미노산을 가리킨다. 예컨대 GAA는 글루타민산을 뜻하고 CGC는 아지닌을 뜻한다. 그래서 64(4×4×4)개의 낱말이 존재한다. 이들 아미노산들이 유전 정보에 따라 순차적으로 결합해서 생명체의 기본 물질인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생명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신비스러운 힘을 상정할 필요가 없다. 벤터와 스미스가 박테리아의 시체를 이용했으므로, 그들의 작업은 메리 셸리(Mary Shelley)의 과학소설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1818년)에 나오는 스위스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의 작업과 비슷하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은 시체 조각들로 이루어진 사람에 '생명의 불꽃'을 넣기 위해 전기를 이용했다. 벤터와 스미스의 작업은 유전자들에 담긴 정보들만으로 생명 현상이 나와서 지속될 수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세포는 사람이 만든 어떤 화학 공장보다 복잡하고 효율적이다. 따라서 그들이 한 작업은 완전한 인공 생명체를 만드는 일에서 첫걸음일 뿐이다. 그래도 생물학과 생명공학의 빠른 발전을 생각하면 완전한 인공 생명체의 출현은 그리 멀지 않았다.

벤터와 스미스의 작업의 일차적 목적은 쓸모있는 박테리아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아가서 합성 생물학의 성과들은 새로운 작물들의 발명과 질병의 치료에 쓰일 것이다. 물론 부작용들도 많고 잘못 쓰일 수도 있지만, 혜택이 훨씬 클 것이다.

새로운 식물들과 동물들을 용도에 맞게 컴퓨터로 설계해서 배양하는 기술은 어쩔 수 없이 사람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자연히 인류의 진화도 그런 기술에 근본적 영향을 받을 것이다. 질병을 일으키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특질을 지닌 유전자들은 건강한 유전자들로 대치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몸을 보다 아름답게 만드는 유전자들이 선택될 것이다. 아름다움의 본질이 성적 매력이므로, 사람들은 자신들이나 자식들이 이성에게 매력있는 몸을 지니도록 설계할 것이다. 그래서 인류 진화에서 성 선택(sexual selection)이 결정적 요소로 자리잡고 자연 선택의 역할은 실질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런 상황은 '유전자·문화 공(共)진화'에서 새로운 국면을 뜻한다. 지금까지는 문화가 유전자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지만, 앞으로는 유전자에 직접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미 압도적인 문화의 영향이 '절대적'이 된다는 얘기다.

그런 세상은 우리에겐 반(反)이상향(dystopia)처럼 느껴질 터이다. 자신의 취향에 맞추어 아이를 주문하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깨뜨리거나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로 다가올 터이다. 그러나 한번 배운 지식은 아니 배울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기술들을 쓰는 먼 미래의 사람들은 생각이 다를 터이다. 아마도 선천적 질병에 시달리면서 살고 위험하면서도 비싼 성형수술로 자신의 몸을 다듬는 21세기의 사람들을 힘들게 산 선조들로 동정할 것이다.